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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맥베스 [Macbeth, 2015] - 욕망과 운명

와이프 말 잘 들으면 성공한다던데... [네이버 영화]

 

 

 

맥베스 (2015) - Macbeth

감독:  저스틴 커젤 /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숀 해리스, 데이빗 듈리스

 

 

그림같은 전쟁

 

 

스코틀랜드에서 내전이 발발하여 역적 맥도널드가 덩컨 왕에게 반기를 든다. 충신은 얼마 없으나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스'가 지친 군사를 이끌고 왕의 최후의 보루로 전장에 나선다. 이제 전쟁의 향방은 엘론 전투에 달렸으니...

안개 속의 전쟁. 치열한 사투 속에서 결국 맥베스는 승리를 손에 쥔다.

두 장군 '맥베스'와 '뱅코우'는 반군과의 전쟁에서 돌아오던 길에 정체 불명의 세 마녀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맥베스에게 코더의 영주가 될 것이며, 장차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자신에게도 무엇인가를 말 해 달라하는 뱅코우. 마녀는 맥베스보단 못하나 대대로 왕을 낳으리라 말한다. 이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왕위에 대한 야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레이디 맥베스'는 예언에 대한 이야기를 서신으로 전해 듣고,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맥베스의 영지에 머물게 된 덩컨 왕을 해치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양심의 가책를 느끼며 주저하지는 맥베스와 달리 아내는 그의 나약함을 꾸짖으며 살인을 부추긴다. 그녀의 설득에 결심이 선 맥베스는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다.

그러나 원하던 왕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맥베스는 죄책감을 느낌과 동시에 뱅코우의 자손이 왕위에 오른다는 마녀들의 예언 때문에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아들 플리언스와 잠시 먼 길을 다녀오겠다는 뱅코우에게 맥베스는 몰래 암살을 지시한다.

 

왕위에 오른 것을 기념하는 저녁 만찬. 암살을 지시한 자들이 도착하고 하객들 몰래 성공여부를 듣는 맥베스. 뱅코우는 처리했으나 그의 아들은 달아났다는 보고에 극도로 분노한다. 그 후 맥베스는 죽은 뱅코우의 망령을 보는 등 공포로 인해 헛소리를 하고, 이상한 기운을 느낀 맥더프는 아내와 자리를 뜬다.

잠을 이룰 수 없는 극심한 불안감에 이를 떨치기 위해 다시 마녀들을 찾아가는 맥베스. 그들은 버님 숲이 대항하여 던시네인 언덕까지 올라오지 않는다면 맥베스는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또한 파이프의 영주 맥더프를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여자에게 태어난 자는 맥베스를 해하지 못하리라."라는 예언한다.

맥더프가 잉글랜드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안 맥베스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는 등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다. 왕의 광기어린 행동을 말리던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의 폭정과 왕을 살해한 죄책감으로 몽유병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결국 숨을 거둔다. 

덩컨 왕의 아들 맬콤은 잉글랜드 군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쳐들어오고, 맥베스는 가족과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려 분노한 맥더프와 싸우게 된다. 혈투 속에 두 남자.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남자는 절대 없다'고 믿는 맥베스에게 자신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미의 배를 때 이르게 가르고 나온 자"란 말을 하는 맥더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 절망에 빠진 맥베스는 전의를 상실하고 맥더프에게 죽음을 맞는다.

이후 던컨 왕의 아들 맬콤이 왕위에 오르며, 주검이 된 맥베스 앞엔 암살당한 뱅코우의 아들 플리언스가 나타난다.

 

 

 

생년월일이랑 태어난 시간 말해봐!

 

 

영국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그의 4대 비극(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 중 하나로 인간의 성격적 나약함과 결함이 어떻게 파국에 이르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욕망과 운명론에 대한 극단성은 참 인상깊은 테마이다.
 
이미 '오손 웰즈'와 '로만 폴란스키'에 의해 영화화 된 작품이며 2015년에 '저스틴 커젤' 감독에 의해 다시 재탄생하게 된다. [맥베스]에서 보여준 뛰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신들린 열연으로 주목을 받은 감독은 [어쌔신 크리드]로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참패한다. 그래서 게임의 영화화는 다들 말리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옮기진 않았지만 배우들의 연극적인 대사 덕분에 움직이는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책이라 하기엔 너무 장엄한데 광할한 대지와 황량함을 담은 배경이란 말그대로 예술이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가장 할 말이 많은 부분은 극의 초반부. 시선을 압도하는 장면은 역시 초반 맥베스의 전투씬이다.

특히 벌판에서 펼쳐지는 초 슬로우 모션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실제 속도의 촬영분과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 덕분에 '느림'은 더욱 '상대적'으로 부각된다. 적과 맞닥뜨리기 전에 긴장감,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의 무게감, 천천히 적의 몸에 박혀들어가는 칼과 흩날리는 선혈 등은 묘한 쾌감을 자아낸다. 이와 반대로 느림과 흔들리는 카메라 덕분에 현장의 실제 전투 속도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달려나가 싸우려는 맥베스와 병사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서려있고 적들의 모습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누구를 주목해야 하는지 정확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또한 죽음에 임박한 젊은 소년병과 맥베스가 마녀들을 보는 장면은 정면을 응시한채로 우두커니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란의 회색 전장에서 그녀들의 형체만큼은 녹색의 필터 사용해 을씨년스러운 물체처럼 그린다.

낮은 현악기의 읊조리는 듯한 사운드는 절대 승리의 전장을 화려하거나 박진감 넘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엄숙하며 처연하게 만들며 유령들이 흐느적대는 장소같이 묘사된다. 스타일리쉬하지만 단순히 볼거리만을 추구한 몇몇 작품과는 차별을 두는 멋진 장면임이 분명하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죠!

 

 

초반 이야기의 플롯 또한 재미있게 짜여져있다.
약 5분 동안 어떤 대사도 없던 전투는 맥베스가 적장에게 거의 다다른 순간 한 남자의 나레이션과 같은 대사로 시작한다. 이는 덩컨 왕에게 전투를 설명하는 병사의 목소리이며 왕은 이 위대한 승전보에 기뻐한다. 덩컨은 자신을 배신한 코더 영주의 지위를 맥베스에게 주고 처형을 명한다. 

여기까지 보면 미래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한 것이 되는데, 이 다음은 맥베스가 전투를 끝내고 시신을 수습하다 마녀를 만나는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코더의 영주가 될것이며 왕이 된다는 예언을 하고 곧 왕의 신하가 찾아와 맥베스에게 코더의 영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린다. 과거의 시점이 현재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묘하게 재구성한 플롯은 어떤 느낌을 가져다 줄까?

원래의 순서라면 이렇다.

맥베스가 전투에서 승리한다 - 마녀에게 예언을 듣는다 - 승리를 전해들은 왕은 맥베스를 코더의 영주로 임한다 - 맥베스는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영화의 플롯은 이렇다.

맥베스가 전투에서 승리한다 - 승리를 전해들은 왕은 맥베스를 코더의 영주로 임한다 - 마녀에게 예언을 듣는다 - 맥베스는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마녀의 예언이 실현되는 시간을 붙혀놓는 결과를 낳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느껴지는 기대감, 예컨데 로또를 사고 그 발표를 듣기까지 걸리는 간격을 없애버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낳게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복권을 사는 즉시 결과를 알게되는 것. 이런 구성은 기적 또는 놀라움의 효과를 크게 증폭시키며, 마녀들의 예언에 더욱 신뢰를 갖게되는 큰 믿음을 탄생시킨다. 시간의 재구성으로 예언의 유혹은 맥베스를 병들게하고 운명을 따르는 그의 의지를 확고하게 굳힌다.

 

 

난 대를 이을수가 없잖아!

 

 

온정이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차가운 이 영화는 연극적인 대사와 몇몇의 장면으로 오픈 세트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연극과 같다.
그 중에는 배우들의 열연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두 배우의 연기는 무섭고 슬프다.

인간의 욕망과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는 광기어린 연기를 소화해야하는 그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연극 대사로 최고조의 감정을 표현한다. 울상짓고 울지않으며, 함부로 소리지르지 않고, 두려움과 혼란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 줄기 눈물을 흘리는 고난이도의 연기를 한다. 이는 단순히 상황을 이해하는데 그치지않고 캐릭터의 심리와 그 안에 고뇌까지 충분히 숙고한 배우들의 능력이다. 이토록 감정이입을 잘하는 배우였나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물들이 관객쪽을 바라보는 듯한 연출 또한 보는 즐거움이었는데 객석을 향해 던지는 말 방백처럼 연극같은 영화에 힘을 더한다. 뱅코우의 암살을 지시하는 맥베스의 해안가 씬에서 그는 비밀스런 명령을 내리면서도 똑바로 서서 떠나는 그를 응시한다. 부하들 역시 맥베스의 양옆에 서서 멀어지는 뱅코우를 바라보는데 광할한 무대를 배경으로 한 연극 무대처럼 보인다. 와이드한 비율의 스크린 역시 이에 한 몫한다.

 

 

 

이건 비밀이지만 다 들리게 말할거야.

 

 

예언이 없었다면 맥베스란 폭군이 탄생했을까? 실현되어진 첫번째 예언때문에 그의 욕망은 불타고 부인의 부추김으로 그는 폭발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맥베스는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왕을 죽인 초반의 선택은 뒤에 따라올 후폭풍을 감당하기에 너무 큰 무게이다. 시작하기가 어렵지 발동이 걸리면 진행은 쉽다 했던가. 이 말은 단순히 시작이 두려운 사람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인간자체의 본성을 꿰뚫고 있는 조언인지 모른다. 

뱅코우의 자식이 왕이 되기위해 대를 이을 수 없는 자신은 발판을 마련한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는 맥베스. 그는 왕을 시해한 순간부터 불안함을 예견한다.

이 비극의 이상한 반전은 "여자에게 태어난 자는 맥베스를 해하지 못하리라." 말한 마녀들의 말. 이 말은 가장 확고한 절대 방패같이 들리지만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미의 배를 때 가르고 나온 자"인 맥더프의 등장으로 산산조각난다. 이 재왕절개 반전이 어이없다 생각되지만 조금 곱씹어보면 산모 자신의 힘을 다해 난 사람이 아닌, 스스로 일어난 남자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맥베스의 마지막도 그의 행적과 마찬가지로 운명을 따르게 되는데 맥더프의 이 한 마디로 그는 어떤것도 거스르지 못하고 포기한다. 운명을 거스르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않는 그의 태도가 맘에 안드는 이도 있겠지만, 그가 밟은 절차가 운명을 따른 결과라는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동물인가를 본연 그대로 잘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같은 맥씨끼리 왜 이래요.

 

 

붉은 필터의 배경은 후반의 맥베스와 맥더프의 1:1를 시작으로 엔딩까지 계속이어진다. 왕이란 이름이 존재하는 한 이 살육은 계속 될 것이다.

 

연극을 시작으로 한 고전 명작이다. 영화는 연극 대사라 지루해 할 수도 있다. 느리다.
따라서 대중 영화라하긴 아쉬운 점이 있다. 평단과 특정 관객들의 반응은 좋았으나 흥행하지 못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다소 뻔한 영화에 지치신 분들께는 신선한 자극제로 다가 올 것이다. 책으로는 접해 보았지만 영화로 '맥베스'를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꼭 보라고 권한다. 연기와 연출, 영상미까지 두루갖춘 작품이니 인상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Popup.nhn?movieCode=113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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