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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1991] - 범죄와 양

나방 싫어! [네이버 영화]

 

 

 

양들의 침묵 (1991) - The Silence of the Lambs

감독: 조나단 드미 / 주연: 조디 포스터, 안소니 홉킨스

 

 

스탈링의 첫 등장. 왜 쫓기는 것처럼 보이는가?

 

 

버지니아 주 콴티코 근교의 숲.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은 홀로 달리기를 하고 있다. 훈련 중 갑작스런 호출.
국장 '잭 크로포드'의 부름으로 그녀는 덩치가 큰 여인들의 피부를 도려내는 연쇄 살인마 '버팔로 빌'의 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살인범의 심리 행동을 연구하기 위한 리포트를 하는 중 협조를 거부하는 단 한 명의 결정적 인물을 만나보라 말하는 잭 크로포트. 그는 다름아닌 정신과 의사로 굉장히 유명하지만, 자신이 살해한 환자의 인육을 먹어 특별 수감소에 수감된 식인종 '한니발 렉터' 박사이다. 잭은 그녀에게 절대 개인사를 이야기하거나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수감소의 '칠튼' 박사에게 렉터의 끔찍한 범죄를 들으며 그를 만나러 가는 스탈링. 방탄 유리 사이로 긴장감이 넘치는 첫 대면에서 렉터는 단 몇 마디의 대화와 냄새만으로 스탈링을 꿰뚫어 본다. 그녀는 한니발에게 기괴한 공포를 느끼지만 놀라운 지식과 프로파일링, 기억에만 의존에 그림을 그리는 놀라운 취미등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렉터는 '버팔로 빌'의 단서를 일부만 제공하며 스탈링의 과거사와 심리를 분석한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버팔로 빌의 희생자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되고 부검과정 중 시신의 입속에서 나방의 누에고치를 발견하는 스탈링. '아케론티아 스틱스'라 불리는 이 나방은 아시아에서만 사는 종으로 누군가가 이것을 정성스레 키웠다는 결론에 이른다.

수사가 계속 진행되던 중 테네시 주 연방 상원의원 '루스 마틴'의 딸 '캐서린 마틴'이 납치된다. 상부의 지시로 렉터 박사에게 좀 더 좋은 시설에서 지낼수 있게 해주겠다며 상원의원에 거짓 제안서를 전달하는 스탈링. 렉터는 그녀의 개인사를 이야기해주는 조건으로 '버팔로 빌'의 실체를 조금씩 알려준다. 하지만 렉터를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 이 대화를 몰래 도청하는 '칠튼'.
스탈링이 떠난 뒤 칠튼은 렉터에게 그녀의 제안서는 가짜이니 범인의 실명을 밝히고 캐서린 마틴을 찾아준다면 좀 더 좋은 시설의 주립 교도소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한다. 상원의원에게 직접말하겠다는 렉터의 거래로 다른 거주지로 이동되고, 그는 이 과정의 허점을 이용해 경찰 2명을 잔인하게 죽인 뒤 탈출에 성공한다.  

렉터가 준 힌트 '단순함'과 '탐욕의 시작' 등으로 추리를 계속해 나아가는 스탈링은 탐문 수사 중 우연히 '버팔로 빌'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전에 살던 립먼 부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집으로 들어온 그녀는 많은 실타래들과 나방 한 마리를 보고 그가 범인을 직감하는데...

 

 

 

가까이가면 물어요.

 

 


[양들의 침묵]은 1988년 작가 '토마스 해리스'가 출간한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필라델피아]를 만든 '조나단 드미'감독이 연출했다.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대작이며 '한니발 렉터 시리즈' 중 3부(총 4부작)에 해당한다.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과 아카데미에서는 5개 주요 부분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각색상)을 휩쓴 초대형 스릴러이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지만 90년대 '연쇄살인'이란 테마의 시발점이 되는 스릴러였으며, 영화 속 3대 악당을 꼽으라면 반드시 넣어야 할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 그리고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역시 '한니발'을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의 명연기 덕분이었다.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고 정면을 응시한 그의 표정, 새하얀 피부에 입가에 묻은 새빨간 선혈, 흐트러짐 없는 헤어와 희미한 미소는 식인 살인자의 과거 행적과 연결되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연출했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구속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이미지는 영화사에 심각하게 각인되서 공포를 뛰어넘는 유행과 패러디를 몰고 올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안소니 홉킨스'가 후에 출연한 다른 스릴러에서는 '양들의 침묵' 속의 너무 강한 이미지때문인지 이를 뛰어넘는 캐릭터를 찾아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만큼 영화의 훌륭한 연출에 걸맞는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지적인 여성의 대명사.

 

 

[택시 드라이버]와 [피고인]으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주목받은 '조디 포스터'는 범죄 스릴러물에서 신입 요원이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의 정석을 보여준다. 경찰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과거, 조직내 여성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과 영특한 초심자의 두려움 등을 눈과 입으로 드러낸다. 총명하고 아름답지만 날렵한 콧날과 턱선을 보유한 그녀의 마스크는 감정적인 호소와 이성적인 판단을 동시에 가진 다층적 캐릭터이다. 

그녀의 연기는 낯선 세계를 방문하는 강인한 여자 주인공을 모티브로 한 수많은 스릴러 장르에 표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믿으며 배짱도 있어서 전혀 접해 보지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해도 굴복하지 않을 것 같지만, 수 많은 사건과 트라우마로 결국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신입들의 이야기.

불필요한 과장이나 테크닉없이 정공법으로 헤쳐나가는 그녀의 연기는 정말 놀랍다. 30살 이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 수상한 최초의 여배우라니...

 

 

 

어서오시게.

 


두 사람의 대화를 그려내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특히 '한니발 렉터'와 '스탈링'의 대화는 말하는 인물의 얼굴만을 정면에 보여주는 연출이 많이 쓰인다. '마스터 투 샷'(한 화면에 두 사람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은 많이 쓰이지 않는데 극의 초반 스탈링이 수감자 '믹스'에게 봉변을 당한 뒤 사건의 힌트를 주는 렉터와의 대화나 두번째 조우 장면 이외엔 찾기 드물다.

처음으로 대화하는 두 사람, 예컨데 A와 B를 각각 보여주는 대화장면은 액션을 하는 사람 A와 리액션을 하는 사람 B로 명확히 구분되게 보여준다.
한니발 렉터의 특성상 그는 완벽한 대답을 하지 않으며 힌트를 댓가로 그녀에게 개인적인 과거사 계속해서 캐낸다. 연출의 특성상 말을 하는 사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되고 사이즈 역시 타이트하게(클로즈 업 또는 바스트 샷) 잡게되는데, 어쩔 수 없이 관객은 그들의 얼굴을 바로 마주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탈링에게 난처한 질문을 하는 렉터의 말을 주시하고,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떤 대답으로 대처할지 궁금하게 된다. 동시에 스탈링과 마찬가지로 관객도 대답을 망설이게 되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가까이 가기 싫은데요.

 

 

렉터가 이송된 후 철창에 갇힌 그와 스탈링의 대화씬은 위에 설명한 연출의 극을 보여준다. 
교차로 빠르게 전환 되는 편집은 마치 실제 환자를 일방적으로 상담하는듯한 한니발의 질문 공세는 최면을 시도하는 것 같으며 뭔가에 홀린 듯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스탈링은 더욱 위태롭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클로즈 업으로 고정된 채 질문 공세를 펼치는 렉터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하지만 서서히 클로즈 업되는 스탈링은 시선을 회피하듯 말한다는 점. 

결국 양의 울음에 대한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순간 카메라를 바라보며, 한 동안 질문하는 렉터의 얼굴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은 처음으로 영화 제목에 관한 단서를 유추시키는 비밀스런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수사 현장에서 스탈링이 보는 과거의 슬픈 환상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오는게 있어야 가는게 있는거 아니니.

 

 

시점이 교차하는 방식의 연출은 대화 씬 뿐 아니라 '버팔로 빌'과의 최종 대결에서도 의미있게 쓰였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영화 평론인 '시점의 강탈'이다. 
본능적으로 범인임을 느낀 스탈링은 총을 겨누고 지하실로 내려간다. 카메라는 초긴장 상태인 그녀의 모습을 정면에서 지속적으로 추적하며 보여주는데 순간 '버팔로 빌'에 의해 지하실은 암흑천지가 된다. 야간 투시경으로 전환되서 보여주는 스탈링의 모습. 추적의 결말에 다다른 그녀의 주도적 입장은 범인의 주관적 시점으로 대역전되어 버린다. 관객은 초조한 마음에 그녀를 살피다 갑작스럽게 범인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되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주변을 더듬거리는 그녀를 조용하게 따라다니며 만지려고 하는 범인의 시점은 더욱 숨막히고, 극한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누가 불을 끈 것이야!

 

 

저는 잘 보이는 걸요...

 

 

양은 인간과 굉장히 비슷한 성질의 동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심에 빗대어 비유되기도 한다.

그 예로 더운 여름엔 자신의 열을 전달하려고 서로 붙어있고, 추운 겨울엔 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혼자 있다고 한다. 필자도 어디서 들은 이야기니 사실은 아님... 

어찌되었든 그래서 '양들의 침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역시... 개인적 의견임을 밝힌다.
도살되어질 양을 구해내지 못한 스탈링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 이 후 고아가 된 그녀는 목장으로 가게되고, 어느 날 밤 어린 아이의 비명 소리와 같은 양의 울음을 듣는다. 재미있는 것은 스탈링이 처음부터 양을 데리고 목장을 탈출하려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 울타리 문을 열었지만 양들은 어리둥절해서 서 있었다고 설명한다.

도살당하기 직전이지만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양은 죽음이 눈앞에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과 다름없다. 어린 시절 양 한마리조차 구해내지 못한 스탈링은 인간의 비명소리와 같은 양의 울음에 악몽을 꾼다. '양들의 침묵', 범죄로 인한 이해 할 수 없는 살인 사건들이 종결되는 그 시점을 이야기하는 고통의 끝을 대변하고자한 제목같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실종된 캐서린을 구하면 다시는 그 비명을 듣지 않을 것 같냐는 렉터의 질문에 그녀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한들 범죄는 무한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양들의 침묵'이란 '양들이 절대 침묵할 수 없다'라는 이중적 메세지를 가짐과 동시에 범죄로 인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고통을 의미하는 것 같다. 써놓고 보니 암울하다. 

 

 

 

나방과 변신. 영화의 중요 모티브. 그러나 끔찍함.

 

 

오랜만에 다시보니 더욱 재미있는 영화였다. 예전에 잊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와서 더 즐거웠고, 개인적으로는 영화라는 매체를 해석하는데 관심을 가지게 했던 최초의 시작이 이 영화였음을 고백한다. 장면을 전환하는 편집점 역시 훌륭하고, 음악과 사운드 또한 흥미로운 작품으로 참으로 풍성한 영화이다.
스릴러를 좋아하신다면 꼭 봐야할 명작이니 매니아 분들은 놓치지 마시기를. 조금 고어한 장면도 있지만 후딱지나가는 편이니 괜찮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Popup.nhn?movieCode=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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