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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이 오리진스 [I Origins, 2014] - 눈은 기억할까?

눈이라는 우주 [Daum 영화]

 

 

 

아이 오리진스 (2014) - I Origins

감독: 마이크 차힐 / 주연: 마이클 피트, 브릿 말링, 아스트리드 베흐제 프리스베, 스티븐 연

 

 

구슬같이 신비한 눈

 

 

내가 어렸을 적에 카메라가 사람의 눈과 비슷하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렸다. 렌즈를 통해 빛을 받아들이고 이미지를 형성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눈과 관련한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에게 나의 세상을 바꾸어 버린 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 눈을 기억하라. 이 눈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을 상세하게 기억하라.

'이안 그레이'의 나레이션. 시간은 그가 8년 전, 26살 되던 해 할로윈데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로윈 파티에서 묘한 분위기의 한 여인을 조우한 이안. 여느 때처럼 눈을 찍기위해 양해를 구하고 그녀는 허락한다. 짧은 대화, 잠깐의 사랑을 느낀 그들. 여인은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이안은 신비로운 홍채를 지닌 그녀가 뇌리속에 박혀버린다.

연구실로 출근한 이안은 신입 연구원 '카렌'을 맡게되었다. 분자생물학자인 이안은 색맹인 쥐가 색을 보게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인간의 눈은 기능이 12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지고 돌연변이들을 통해서 가장 기초적 단계에서 가장 복잡한 단계의 눈 형태를 만들려는 이안. 진화란 증명되지 않는 것이기에 이를 밝혀내고 싶은 그의 열의를 신입인 카렌은 이해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그들은 토론 끝에 앞을 보지못하는 유기체 중 PAX6 유전자를 가진 종을 찾기 시작한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간 이안. 운명을 믿지 않는 남자이지만 '11'이란 숫자에 홀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엔 거대한 광고판이 하나있다. 그토록 찾던 그녀의 홍채가 찍힌 대형 광고판. 이를 시작으로 검색과 추적을 하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그녀를 발견한다.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두 남녀. 그녀의 이름은 '소피'. 이안의 질문에 하고 싶은 대답만 골라서 하는 소피는 영적인 세계와 전생을 믿는 여자. 과학자이자 확실한 증명만을 믿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안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그런 그들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으로 발전되고 서로의 의견과 믿음을 크게 무시하지 않는다.

 

 

 

저 눈이 포토샵으로 한게 아니라고?

 

 

소피의 집으로 이사한 이안은 그녀와 동거를 시작하고 혼인신고를 하는 단계까지 온 두 사람. 

혼인신고 당일 이안은 전화로 카렌에게서 PAX6 유전자를 가진 눈이 없는 벌레 '에세니아 페티다'의 발견을 듣고 크게 흥분한다. 당장 혼인신고를 못해 실망한 소피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함께 연구실로 향하는 연인들. 하지만 소피는 보지 못하는 벌레를 보게 만든다는 이안의 연구를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 생각한다. 적절한 설명과 예시로 이안을 이해시킨 소피. 키스를 나누다 실수로 포름알데히드가 이안의 눈에 들어가고 잠시 시력을 잃은 이안은 카렌의 도움으로 붕대를 눈에 감은채 안정을 취한다. 


어색하게 집 앞에 도착하는 두 사람. 엘리베이터 안에서 예민해진 이안은 소피와 말다툼을 하지만 갑자기 멈춰버린 기계. 외부와 연락을 취할수없어 자의로 탈출하려던 와중, 무사히 빠져나간 이안과 다르게 소피는 사고를 당하고 결국 사망한다. 소피의 죽음으로 망연자실한 이안은 사고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게 되고 그를 위로하던 카렌과 새로운 연인으로 발전,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7년 후...

연구의 성공으로 유명인사가 된 이안은 카렌과 아들 '토비'를 낳게 된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토비가 유아자폐증이 의심되니 병원에 검사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의사. 토비는 사진을 판별하는 검사를 받지만 자폐증과 전혀 상관없는 검사라 느낀 부부는 의심을 하게되고, 이안은 사진의 실제 장소로 찾아가 궁금증을 해소하려한다. 도착한 장소는 '폴 에드가 데이리'라는 남자의 고향이었고, 검사에 쓰인 사진은 모두 그와 관련된 인물과 장소였다.

 

아들 토비와 폴 에드가 데이리의 공통점은 홍채의 패턴이 같다는 점. 토비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남자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를 찾던 부부는 이런 사례가 또 존재하는지 홍채 데이터 베이스를 열람하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죽은 소피와 똑같은 패턴을 지닌 인도 소녀를 찾게되는데...

과연 소피와 같은 홍채를 지닌 이 인도 소녀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까?

 

 

 

안보이지만 그래도 써보렴.

 


독특한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비범한 감독 '마이크 차힐'의 영화 [아이 오리진스]. 초반은 신비로운 홍채를 가진 여인 '소피'를 등장시켜 과학적 사고를 지닌 남자 '이안'과의 이루어 질 수 없는 로맨스를 예상케 한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 이 후의 이야기는 눈과 기억이라는 소재를 연결시켜 근 미래 SF 영화와 같은 느낌을 주다가 미스터리로 방향이 전환된다. 별다른 정보없이 영화를 보던 필자는 당황할 수 밖에.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던가. 영화는 이 말을 한 단계 더 발전 시킨 상상력을 보여준다. 홍채(동공 주위에 있는 도넛 모양의 막으로서, 수축과 이완을 통해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여 안구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라는 소재와 홍채 인식이라는 이제는 일반인들도 알만한 패턴의 코드화를 사용하여 낯설지 않는 접근을 시도한다. 문제는 지문보다 더 고유한 홍채를 나 아닌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는 전제와 같은 홍채를 가진 사람은 같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적 질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동시대에 같은 홍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 인물이 죽은 이 후에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 발현되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양립하기 힘든 종교와 과학의 대비를 통해 주인공 이안의 극단성을 부각 시키고 윤회라는 즉, 생명이 있는 것이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되는 불교적 사상이 저변에 깔린 작품이라 더욱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말이되냐 안되느냐등의 논란이 아니라 사랑과 기억을 약간의 추적 미스터리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 좋았다. 그것을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 방식. 눈을 들여다보는 익스트림 클로즈 업으로 다양한 홍채의 우주를 보게하는 점. 어릴적 형형색색의 구슬을 모아서 마치 그 안에 있는 모든 색을 다 파악해 보려는 듯 뚫어지라 쳐다보던 그 때처럼 우주의 단편을 보여주는 방법은 친근하고 아름답다.

 

 

 

빙고!

 


증명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이안이 아무런 출처를 남기지 않은 소피를 찾는 법은 그의 신념과 매우 이질적이다. 세븐 일레븐에 들어가고, 담배와 복권의 가격은 11달러 11센트이다. 그 후, 밖에 나와 본 건물들의 창은 모두 11자 형태처럼 보이고 건물벽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역시 그러하다. 복권에 찍힌 발매 시간 역시 11시 11분 11초.
그의 앞에 도달한 버스는 11번 브로드웨이를 향하고 7018번 버스의 '8'은 지워져있다. 이제 버스에서 내리라는 듯 개가 짓으며 홀리듯 내린 이안의 눈에는 소피의 신비로운 눈이 찍혀있는 거대한 광고판이 보인다. 몇몇 영화에서 어줍지않게 쓰이던 히치콕의 '줌 아웃 트랙 인'(줌을 늘리면서 동시에 카메라를 전진시켜 배경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내는 시각효과. 또는 '줌 인 트랙 아웃'으로 그 반대)은 기가막힌 우연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잘 표현한다.

 

이 에피소드 자체는 과학자의 신념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하지만 주인공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관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안의 절대적인 신봉은 그 후에 발생할 다양한 사건들로 무너져 내릴것이라는 작은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다른거 제쳐놓고라도 솔직히 저 복권은 1등 이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게 가능하다고?!

 

 

드라마틱한 전개와 사랑하는 연인을 자유롭게 찍은 방식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시선은 흔들린다. 카메라를 고정하고 찍은 장면은 거의 없다. 소피를 알고 나서, 그녀를 잃은 후에, 홍채가 똑같은 인도 소녀 '살로미나'를 만나는 모든 순간 이안은 흔들린다. 어쩌면 이 남자는 처음 부터 과학을 맹신하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 본연의 표본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과학뿐 아니라 누구든 신념과 기준을 가지고 사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 항상 사고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극단이란 나무는 흔들리는 바람에 쓰러지게 되어있다.

결말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다 준다. (제일 마지막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의 홍채사진이 나와서 이상스런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신념을 버렸다고 하기보단 바뀌었다고 말하는게 나을지 모른다. 어짜피 우리모두 믿고 싶은대로 믿고, 마음은물결처럼 흘러만간다. 하지만 영화만큼은 과학적으로 풀지않기를 바란다. 이건 떠난 사랑을 그리워하다 우주를 깨달은 남자의 판타지다. 

 

 

 

 

 

 

이미지 출처: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83342#947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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