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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2000] - 영웅을 설계하다

'자네라면 진실안에 있는 더한 진실을...' [강철의 연금술사] 중에서 [Daum 영화]

 

 

 

언브레이커블 (2000) - Unbreakable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 주연: 브루스 윌리스, 사무엘 L. 잭슨, 로빈 라이트, 스펜서 트리트 클락

 

 

혼자 살아남을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스트레일 177 3부작'의 시작이자 [23 아이덴티티]와 [글래스]의 출발이 되는 영화. [식스 센스]로 반전 영화의 최고봉이자 전설의 되어버린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의 2000년작 [언브레이커블]. 오늘의 영화 침략을 소개한다.

*'이스트레일 177 3부작'은 [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 [글래스] 세 작품 속 중심 인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열차사고이다. 물론 픽션. [언브레이커블]의 히어로 '데이비드 던'은 이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고, [23 아이덴티티]의 주인공 '케빈'의 아버지는 이 열차 사고와 관련되어 있으며, '일라이저'는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

 

 

 

왜 아이들은 부모의 바램대로 가지 않는가?

 

 

1961년 필라델피아 백화점. 아기의 울음 소리와 함께 한 의사가 찾아온다. 방금 출산을 한 듯한 여인은 아기 '일라이저'(사무엘 L. 잭슨)의 울음소리가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느끼고, 상태를 본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급히 엠뷸런스를 요청한다. 아기의 팔 다리가 모두 부러졌다 말하면서.

시간은 흘러 흘러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기계 고장으로 인한 열차 탈선 사고가 일어난다. 이로 인해 모든 승객이 사망했으나 유일하게 딱 한 사람이 생존했으니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던'(브루스 윌리스). 
풋볼 경기장의 안전 요원으로 일하는 그는 대학 시절 잘나가는 풋볼 스타였지만 자동차 사고로 선수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열차 사고로 사망한 승객들을 위한 합동 추도식을 마치고 차를 타려는 데이비드는 자동차 와이퍼에 꽂힌 메모를 본다. '당신은 평생 동안 몇 번이나 병에 걸렸습니까?'. 불안한 결혼 생활로 인한 위기감과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받은 낯선 질문. 그는 직장에 병가를 낸적이 있는지, 혹 실생활에서 한 번이라도 몸이 아팠던 적은 있었는지를 알아본다. 
결국 질문의 근원지인 메모를 따라 아들 '조셉'(스펜서 트리트 클락)과 함께 화랑으로 방문한 데이비드. 그곳에는 이제 중년이 된 일라이저가 그를 맞이한다. 선천적으로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서지는 그는 'Mr. 글래스'라는 별명을 얻지만 어머니의 지극한 관심과 도움덕에 한정판 만화를 취급하는 화랑의 주인이 되었다. 왜 자신에게 그런 메모를 남겼는지를 묻는 데이비드에게 만화가 고대 역사의 전달법이라 믿는 신념과 평생을 불행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몸상태를 설명하는 일라이저. 수많은 대형 참사들을 주시하던 그는 자신의 반대 선상에 있는 인물 즉, 만화에서 나올법한 선천적으로 강하게 태어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같은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줄거라 믿고 있었던 것. 

100%의 확신은 없지만 데이비드를 자신이 찾고자 하는 사람과 가장 가깝다고 믿는 '엘라이자'. 그런 그의 말이 황당하지만 스스로 타고난 사명과 달리, 어긋나버린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데이비드'.    
이 만화 같은 현실은 어떻게 마무리 될까?

 

 

 

최고의 영웅은 아빠라고 믿던 시절.

 

 

히어로 

태생부터 히어로인 사람이있는 반면 후천적인 사고나 계기에 의해서 히어로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외계인이나 신, 기계의 힘을 빌리거나 감마선의 영향을 받은 일반인, 그리고 트레이닝만으로 '한 방'에 보내버리는 대머리 등등.
[언브레이커블]의 히어로는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정확한 힘의 근원을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영웅의 일대기중 '탄생'을 이야기하면서도 힘을 '얻은' 시점보다는 힘을 '깨닫는' 시점에 더 주목한다. 

'데이비드 던'은 젊은 시절, 남다른 파워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게 왜 주어졌고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하물며 철부지처럼 자랑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런 힘이 일상에 굳이 쓸모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풋볼 스타였던 시절 발생한 교통 사고에서 위험한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연인(로빈 라이트)의 바람대로 다친 '척'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걱정하고 싫어하는데, 이런 힘을 사용한다는 건 더욱 불필요하다고 느낀 것.

젊은 시절 데이비드의 선택이 아쉽다거나 어리석다고 폄하하기 힘들만큼 그는 현실적이고 진지하다. 이 때문에 결혼 생활에 찾아 온 위기감, 가족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어버린 현대의 무기력한 가장들과 같이 더 이상 날개를 펼 수 없는 나이대로 접어든다. 

데이비드의 아들 '조셉'은 아빠를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힘도 세고 안전 요원도 하고 예전에 대학 풋볼 스타였다니까 매우 확고하게 믿는다. 그 와중에 동경의 대상인 아빠를 히어로라고 믿는 '일라이저'의 등장. 아이의 눈엔 오죽했을까. 
데이비드는 자신의 정확한 주체성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영웅이라고 믿고 따르는 조셉의 기대치로 더욱 압박감을 느낀다. 풋볼 선수대신 경기장 안전요원을 하는 그에게 같이 풋볼하자고 달려드는 아들. 아빠의 우울증은 더욱 커져만 간다. '데이비드'의 무기력감은 창창했던 젊은 날 못다이룬 아빠의 꿈과도 비슷하다. 관객 역시 그의 우울함에 수긍한다.

 

 

 

남자의 리액션은 나오지 않는 장면. 부부는 다른 죄책감을 안고 산다.

 

 

[언브레이커블]은 현실과 코믹 북의 세계를 분리하면도 그 틈새를 파고드는 영화다.

'데이비드'는 그의 직업을 보아도 알 수 있듯 태생적으로 강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무기력 안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성을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은 종종 '괴물' 취급당하기도 하지않던가.
힘을 통제하는 히어로는 왠지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으로 그린다. 홍수나 화재등의 사건 사고 속에서 인명을 구하는 시민 영웅들과 겹쳐 보인다. 허나 그들 중 누구도 '난 히어로니까 사람을 구해야만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그런 상황에 놓이면 당신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번 영웅 대접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그에 걸맞는 정의감 넘치는 행동을 해야 품위가 사는 법이다. 일반인이든 히어로든 누군가 불러주면 자신의 사명에 맞는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가 가진 죄책감은 결혼 생활의 위기가 결정적으로 보인다. 초반은 그들과 관객 모두 같은 원인을 생각한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 다른 이유로 힘들어 한다. '데이비드'의 죄책감은 자신이 모르는 진짜 '사명'이다.

현실에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타인의 조언이 필요한 순간도 필요하다.
영웅의 이름을 불러주는 역할을 바로 '일라이저' 담당하며 [글래스]에선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된다.

 

 

 

 '엘라이자'는 왜 분노하는가.

 

 

빌런

이 영화는 히어로의 탄생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빌런이 탄생하는 영화이다. 제목은 [언브레이커블]이지만 시작은 유리 인간 '일라이저'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그가 탄생해야만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일라이저'가 자라면서 수 천번은 던졌을 질문은 아마 '난 왜 태어났을까?'가 아닐까. 누구나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나같이 병약한 사람조차도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질문의 시작이 그를 빌런으로 만든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는 방법이 잘못되었기에 스스로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그럼 그가 히어로에 대적 할만한 빌런일까? 육체적으로 대단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너무 허약하다. 심지어 정신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가장 무서운 힘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믿음'.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이들이 가진 소름끼치는 신에 대한 맹목성,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가진 과학에 대한 광기와 비슷하다. 만화책은 그에게 실존에 대한 단서이자 성경과도 같다. 그의 갤러리에 찾아온 손님이 카툰 작품을 아이에게 선물로 줄거란 말을 듣고 분노하던 엘라이자를 떠올려보라.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기위한 폭주 기관차에게 주변인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되지않는다. 인간의 생명따윈 파리 목숨과 같다. 영화의 처음에 등장한 만화에 대한 통계는 '일라이저'가 보고 깨달은 바라해도 무방하다.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한 끝없는 실험.

 

 

어찌보면 그는 꿈을 잃고 살아가는 현재의 가장들에게 금지된 마약과 같은 역할이기도 하다. 달콤한 자극일지 모르지만 쾌락을 누리게 한 후에는 어떤 책임도 지지않는 순수한 악의 생명체. '일라이저'는 자신의 힘을 발견하기 위해 또는 삶의 생기를 되찾기 위해 '데이비드'를 일종의 '일탈'로 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후반, '일라이저'의 망상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영웅이 된 '데이비드'가 스스로 '증명'한다. 영웅적 행동의 결과는 결국 배신과 죄책감을 남긴다. '일라이저'가 저지른 범죄와 폭파로 인한 무분별한 살생이 '데이비드'의 탄생으로 인해 필연적인 의무로 바뀌게 된다. 
때문에 누가 승리자이고 누가 패배자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애시당초 '일라이저'는 자기 파멸의 인물이다. 
그래서 초능력이나 무시무시한 파워를 가진 어떤 빌런보다 더욱 위험할 수 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카메오 참 좋아하시는 감독님.

 

 

만화와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속 소재는 유령, 외계인, 초자연적인 것, 소외된 군집 등 잘 드러나지 않는 세상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연출과 이야기가 치밀하게 짜여져있지 않으면 영화는 허무맹랑 해 보일 수 있다. 이런 그가 2000년대 (지금의 히어로 홍수가 나기 전)에 초자연적 영웅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언브레이커블]은 지금의 마블 히어로들의 영화가 제시하지 못하는 히어로 무비의 독특한 대안이다.

만화책 속 히어로를 영화로 재연하는데 눈이 돌아가있는 현 시대의 헐리우드. 감독은 만화책과 실제는 다르다고 말하는 진짜 현실에서 출발하여 극 속에서 하나의 연결점을 긋는다. 만화 주인공같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존재할 수 있어라는 누구나 해보았을 상상. 그 상상을 외형적으로 가장 나약한 빌런을 통해서 서술한다. 만화책 역시 그림과 글로 이루어진 역사의 기록이라는데 출발한 감독의 이 아이디어 덕분에 자신이 히어로임을 믿지 못하는 한 남자의 탄생과 반전이 생겨났다.

 

 

 

매우 현실적인 파워 측정 장면.

 

 

번개를 맞고 살아남은 사나이나 자식을 구하려고 차를 들어올리는 어머니같은 가쉽란의 등장할만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종종 봐왔기에 열차사고에서 살아남은 남자의 이야기가 신비롭지만 마냥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런 사건사고 이 후에 이것이 단순히 기적이 아닌 우리와는 다른 종의 사람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만화와 연관시켜 풀어내는 출발점이 흥미로웠다. 신화적 발상과 모티브에 초점이 맞춰져있지만, 현실과 잘 융합시키는 감독이란 생각이 든다.

'M. 나이트 샤말란'은 [애프터 어스]나 [라스트 에어벤더]같이 완전히 현실과 다른 세상의 세계관을 가진 SF, 판타지물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다. 규모가 큰 영화에서는 갈피를 잘 못잡는달까. [23 아이덴티티]로 다시 도약하더니 [글래스]에서 다시 날개를 폈다. 실패를 통해 자신을 잘 추스렸을지 모르겠지만, 더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픈 나의 욕망을 채워주어 고맙다.

 

 

 

내 손을 잡게 친구여.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여서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인 영화였다. 액션 히어로물들의 때려부수는 영화를 기대한다면 그냥 마블 영화를 보시는 것이 좋다. DC 영화도 있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작품은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액션엔 큰 관심이 없는 듯.

영웅들의 현란한 싸움에 피로가 온 분들, 뭔가 다른 것을 원하고 갈증나신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좀 우울할 순 있지만 어렵지 않은 장르 영화이다. 올해 초 개봉한 [글래스]의 시작이 되는 영화이니, [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 [글래스] 순으로 연달아 보시는 것을 권유한다. 

 

 

 

2019년 1월 '용산 CGV'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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