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 (1999) - Flawless
감독: 조엘 슈마허 / 주연: 로버트 드니로, 필립 시모어 호프만(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오늘은 '조엘 슈마허' 감독의 1999년작, 영화 [플로리스]를 보자.
친구들과 동네 공터에서 운동을 즐기고 있는 '월트'(로버트 드니로). 시합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낸다. 퇴역 군인인 그는 1988년 은행 강도로 부터 인질을 구출한 '이스트 사이드의 영웅'으로 동네의 마초맨. 보수적이고 게이를 너무 싫어하며 함부로 말을 하는 남자다.
게이 바에서 가수를 하고 있는 그의 이웃 '러스티'(필립 시모어 호프만). 게이 친구들과 노래 연습을 한답시고 시끄럽게 굴어서 월트의 신경을 긁어대는 사람이다. 월트의 혐오스런 대상인 그는 못생기고 뚱뚱하지만 성전환 수술로 진짜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월트가 운동을 끝낸 같은 시각, 마약상 '제트'의 돈을 훔친 앰버의 애인. 월트와 러스티의 아파트에 몸을 숨기는데 성공하지만 바로 그 날 밤 제트 일당의 습격을 받습니다. 탱고 클럽에서 댄서 캐런과 좋은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온 월트는 잠결에 총성을 듣게되고... 영웅심 때문이었을까, 권총 한 자루를 들고 총성이 난 윗 층으로 향하던 그는 계단에서 갑작스레 쓰러진다. 동시에 돈의 행방을 물으며 실랑이를 벌이던 제트 일당은 엠버와 그녀의 애인을 쏴 죽인다.
병실에서 눈을 뜬 월트. 뇌졸증 진단으로 오른쪽에 마비가 온 그는 성치않은 몸이 되어 버린 탓에 절망스런 나날을 보낸다. 은둔 생활을 하던 그에게 담당 의사인 '나르마라' 선생님이 찾아와 마비에 도움이 되는 노래 레슨을 받기를 권유하고... 밖으로 나가서 레슨을 받을 수 없었던 월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러스티에게 찾아가 레슨을 해 줄 수 없겠냐 묻는다. 성전환 수술에 돈이 필요했던 러스티는 내키지 않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이제 그들의 노래 교실이 시작한다.
톰과 제리같이 티격태격하는 '월트'와 '러스티'. 그리고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제트 일당. 위협스런 분위기 속에 두 주인공은 어떤 이야기를 펼쳐 나갈까?
연기
의사 출신 배우가 의사를 연기하거나 전직 수영선수 출신인 배우가 수영을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뇌졸증 환자와 게이를 연기한다는 것은 관찰, 집중, 해석등 요하는 고도의 테크닉이다.
'드니로'와 '호프만'은 둘 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 몸과 말투로는 기술을 보여주고 감정적으로는 연민을 표현해야한다. (말로는 무엇을 못하랴)
[플로리스]는 내용보다도 연기를 연기같이 하지 않는 두 사람 연기를 보는 것이 무척이나 신나는 영화다.
말이 필요없는 명배우란 '로버트 드니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레슨을 받으며 조금씩 풀리는 입, 지팡이없이 두 발로 탱고 클럽에서 춤출 때 걸음걸이를 보면 마치 환자의 회복 단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경험으로 알고 연기한 듯 하다. 배역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결과로 보여주는 몇 안되는 배우다. 특히 소파에 걸터앉아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상황에 흐느껴 우는 장면은 입이 거친 퇴역 군인을 동정하기 충분하다. 다만 배우 특유의 삐딱한 미소만큼은 그대로 표현되서 다른 몇몇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가 그의 연기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 영화가 아니었다는게 참 놀랍다.
대략 5년 전 '필립 시모어 호프만'의 타계 소식이 들렸을 때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배우이며 떠벌이, 욕쟁이, 악인, 외톨이, 마음이 따뜻한 친구 등등 수 많은 역할을 자신의 진짜 인생인 것 마냥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너무 애착하는 배우임을 이미 말해버렸지만 그의 연기를 보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특히 후반기 작품은 손꼽을 명작들이 많지만,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어릴 시절 그의 연기를 가장 처음 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난 세상에 모든 게이가 다 그와 같은 줄 알았다. 대화 때의 곧게 뻗은 손 끝, 눈을 질끈 감는 행위, 살찐 옆구리에 손을 살짝 엊는 동작 등등. 배역에 몰입한 그의 표현력이 그저 신기 할 뿐이다. (극중 짧은 머리에 양복을 입고 있는데도 게이같다)
아... 이젠 '필립 시모어 호프만'의 놀라운 새 작품을 다신 볼 수 없다.
시선
'러스티'는 '월트'네 맞은 편 윗 층에 살기 때문에 구조상 내려다 본다. 그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업신여겨지는 낮은 부류의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누구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수 없이 많은 질문을 던져봤을 사람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넌 여자가 아니야, 가짜야. 라고 말하는 비난은 익숙한지 오래다. 연민, 동경, 궁지에 몰린 상황, 모든 것이 순탄치 않는 순간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사는 인물이다. 밑바닥에는 슬픔과 분노가 깔려있지만, 남자라는 껍질을 깨부수고 새로운 사람으로 날아가려는 사람, 가장 활기찬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 교실은 상층에 위치한다. 가장 시끄럽고 가장 멀리 퍼져나갈 수 있게.
'월트'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게이들의 세상은 심하게 일그러져있다. 그의 편견과 고집에는 과거가 있다.
자신이 믿었던 친구와 부인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이며, 사고 후에는 댄서인 '캐런'과의 만남 또한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가 아는 세계는 흑과 백으로 단순하고 그의 공간은 외롭다. 상처를 감추기위해 그는 더 고고하게 보이려 한다.
뇌졸증 환자 이후는 비틀거리다 바닥에 누워버리는게 일상이 되어버린다. 친구들이 운동도 하고 춤도 추던 자신의 예전 모습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집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는 일이 없었던 과거에 비해 사람의 출입은 잦아진다. 타인이 내려다보는 세상은 위협적이다. 환자의 몸이라 어쩔 수 없지만 누워야지만 비로서 함께하게 된다.
러스티는 살짝 높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월터의 노래를 칭찬해주며 흐뭇하게 웃는다. 선생과 학생, 서로 다른 목적, 그런 이유는 멀찌감치 던져버린 채 하나의 목소리에 몰입한다.
이제 '러스티'와 '월트'는 노래 연습으로 비슷한 위치의 시선을 공유하게 되었다. 누워있는 월트를 바라보는 러스티의 장면은 맨 마지막 뿐이다. 그는 온화하다. '러스티'는 자신이 가장 싫어해던 차별주의자에 동료애를 느끼고 '월트'는 게이 가수의 화려한 방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한다.
역지사지
영화는 이해하기 쉽다. 보수적인 꼰대와 낯선 성소수자가 함께 하는 감동 서사. 그들은 서로 얼만큼 가까워 질 수 있을까? 다행히도 계층 갈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눈물짓는 일은 없다. 적당히 미소지을 만한 훈훈함과 난처한 상황들이 오가는 발랄한 영화이니까.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은 넌 웃을수있니." 김건모는 [핑계]에서 수많은 힐링 영화가 가진 구조를 말한다. 다른 세대, 다른 인종, 다른 처지들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으론 쉽지않다. 생각은 실천없이 상상에서 끝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모 대학의 사진과 졸업 전시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바로 '게이 클럽'이었다. 사진 속 그들은 '러스티'처럼 못생긴 게이였다. 영화 제목 그대로 'Flawless'하지 않은, 결점 투성이의 사람들. '정말 이쁜 사람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구나.' '수술이 잘 된 사람들만 TV에 나오는 건가?' 그렇다고 봐야한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외형만을 관찰한다. 하지만 조명? 분위기? 기타 등등 때문이었을까. 그들의 얼굴은 겉으론 웃고 있지만 왠지 지치고 슬퍼보인다. 연출된 사진 일 수 있지만 사진 속 표정에서 감정이 전달된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입장을 바꿔 생각하라고?
타인을 '이해'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 번 마주치기도 힘들고, 볼까말까한 사람들은 나의 이해 대상들이 아니다. 혼자사는 퇴역 군인 출신 뇌졸증 환자나 클럽에서 노래하는 게이는 내겐 더욱 낯설다.
하지만 '역지사지'란 말은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 보거나 상대의 삶을 살아보라는 뜻이 아니다. (판타지, 코미디에선 이런 방식을 자주 애용한다) 사자성어 속에는 타인에 대해 배려하려고 노력해 봐야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월터'와 '러스티'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 할 순 없어도 최소한의 시도를 한다. 물론 영화의 설정상 월터가 뇌졸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평생 일어 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떠한가? 서로의 목적은 달랐지만 그 변화의 첫 걸음이 중요한 것이다. 서로 마주보기도 껄끄러운 두 사람은 수업을 통해 대화를 시작한다. 레슨은 '러스티'가 선창하고, '월트'가 따라하는 방식이다. 이 수업에 진행은 반복이며, 기계적인 연습이다. 사람 사이의 이해 역시 수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 노력의 과정이 '역지사지'를 완성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월트'와 '러스티'가 함께 노래하는 장면과 함께 이 영화에 나왔던 거의 모든 배우들의 얼굴과 이름이 나온다. 조연 하나 하나까지 전부 초점을 맞추고 소개한다. (악당인 제트네 패밀리도 전부)
사람 혼자서는 너무 부족한 동물이라 자연스레 뭉치며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때 증오의 대상이었던 이웃을 구하러 가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귀한 것을 망설임없이 내놓기도 한다.
이런 부족한 모습과 인정이 모여서 하나의 완벽을 이루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따뜻한 말 한 마디와 격려가 우리 모두를 완성 시키는 순간이 있다. 혼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주변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면 더욱 완벽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0155711/mediaviewer/rm21794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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