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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샤이닝 [The Shining, 1980] - 무서운 관종 아빠

까꿍! [Daum 영화]

 

 

샤이닝 (1980) - The Shining

감독: 스탠리 큐브릭 / 주연: 잭 니콜슨, 셸리 듀발, 대니 로이드

 

 

 

피바다!

 

 

어느 날, 소설가 '잭'은 그의 가족들(부인과 아들)과 '오버룩 호텔'로 향한다. 폭설 때문에 영업을 하지않는 기간동안 호텔 관리를 하며 글을 쓸 참이다. 
금주와 창작에 의한 스트레스, 호텔에서의 알 수 없는 음산한 무엇때문에 환각에 시달리다 점점 미쳐가는 잭. 
결국... 도끼를 들고 가족사냥에 나선다는 기가 막힌 이야기. 참고로 '샤이닝'이란 아들 '대니'에게 있는 어떤 능력의 이름.

 

 

 

어제 몇 차까지 갔었는지 기억이 안나...

 

 

고딩 시절.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어머니께서 나 때문에 굉장히 속상해 하신 날이 있었다. 직업상 지방이나 해외에 자주 나가있던 아버지는 아내의 푸념섞인 전화 한 통에 곧장 집에 오셨으니.
체벌이라곤 해 본적이 없던 그는 오늘 만큼은 아들. 노무. 시끼.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겠노라며 굳은 표정을 지으셨다.
아파트 앞 쉼터 비스무리 한데서 매로 쓸 나무가지를 하나 가져오라 하신다. 나는 울먹이며 뭘로 고를까 고민하다 야구 방망이 보다 좀 작은 나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엎드려 뻗친 내게 정확히 10대를 날리시고는... 나도 잘 못했으니 똑같이 때리라 한다. 응? 
이건... 무슨 개그콘서트 꽁트같이 느껴 질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엔 좀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까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단 '1'도 기억나지 않는다.
난 엉엉 울며 잘못했다 빌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때렸다. 아버지 엉덩이를.
미친 놈 같겠지만 그 순간에도 어느 정도의 강도로 때려야 될까를 생각하면서 힘 조절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솔직히 엄마 속상하게 하는건 통계적으로 내가 덜 했으니까.
지금은 뭐 마주보고 살 일 없지만... 아들에게 맞던 그의 슬픔보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던 그의 체벌이 더 두려웠다.
어쨌든 엄마, 미안.

 

 

 

우리 둘이 닮았데... 흥! 기분 나뻐.

 

 

아, 아버지. 친구같은 아버지는 드물다. 미쳐버리지 않으면 다행일지 모른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한국의 아버지는 대부분 '과묵'하다.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증조부의 아버지까지 모두 '과묵과묵 열매'를 먹었을지 모를 일이다.
말하지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생각을 모르면 대화는 단절되기 마련이다.
밖에서 파죽이 되고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아, 힘드네. 아... 그러게...  아버지도 그 땐 기운없었겠구나 라며 혼잣말하는 우리.
그들이 사랑받는 법을 몰랐다고?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과는 달리 아버지 때는 대부분 형제 자매들이 많았다. 사랑받으려고 부단히 애쓰지 않으면 부모에게 칭찬 한 톨 받기 힘든 시절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관종'이다. 잭의 도끼질은 관심 좀 가져달라는 아버지들의 막춤이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자. 육아에 바쁜 아내는 남편에게 관심없고, 애들은 놀러가자고 조르고, 집에선 나 혼자 숨 쉴 공간하나 없다. 그래서 미친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호텔을 핑계삼아. 글은 안 써지고, 헛 것은 계속 보이고, 부인은 너무 말랐고, 아들은 이상하고, 결정적으로... 술이 없다!


잭은 최악의 아버지가 된다. 가장의 본분을 상실한다. 정신줄을 놓지 않고 호텔 관리나 잘 했어야 한다.
그래서 서글픈 감정도 든다. 정신이 나갔어야 할 대상이 엄마도 아들고 아닌 아버지란 점이 속상하다. 뾱뾱이 망치를 들고 쫓아다녔으면 '잭 니콜슨'이 아무리 무서운 표정을 지어도 귀여웠을텐데.
그는 싸이코 연기를 하기에 너무 싸이코같은 표정을 잘 짓는다. 이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싸이코 역을 했으니 이 영화에선 익숙할거다.

 

 

내가 관종이라고 누가 그러디?

 

 

까칠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만드신, 2000년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미국의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1980년 작 샤이닝(The Shining). 
너무나 유명한 영화지만 정작 원작자인 '스티븐 킹'은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단다. 소설 속의 아빠는 영화에 비해 인간적이 면이 묘사되었다 하던데, 극 속에선 너무 미친면만 부각되어 나왔기 때문이라는... 뭐 그런 이야기가 있다. 소설의 결말과 영화의 결말도 다르다. 영화 쪽이 더 무자비하고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 여름 밤에 덥거나 작업이 되지 않으면 가끔 이 영화를 틀어 놓고 일한다. 창은 아주 작게해서.

고전 중에 고전이 된 '샤이닝'은 많은 영상 매체에서 패러디와 오마주되었다. 특히 유령의 시점같은 촬영 기법(스테디 캠을 단순 촬영 장비로 쓴 것이 아닌, 연출 기법으로 최초 사용. 스테디 캠의 최초 사용은 '록키')으로 영화사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유압방식의 이 카메라는 실제 사람이 달렸을 때 나타나는 시점보다 흔들림이 적게 느껴지게 보인다. 때문에 누군가를 쫓아가는 장면에서는 어떤 다른 존재가 추격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마치 귀신같이. 이런 연출 방식과 더불어 온통 눈으로 덮힌 배경 덕에 차갑게 숨통을 조이는 장면 장면이 일품이다. 지금이야 '샤이닝, 샤이닝' 그러지만 개봉 당시엔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명감독이라면 자신이 애용하는 몇 가지 연출들이 있다. 큐브릭의 전매 특허는 넓은 공간에 캐릭터 하나를 고립시키는 씬을 잘 사용한다는 것이다. 사각 프레임 한 가운데 등장 인물들을 몰아놓고 '익스트림 롱 샷'으로 촬영하면 위급한 순간에 갈 길을 잃게 된다. 도망갈 곳이 사라지는 셈이다.
아래는 그의 영화 몇 편의 예시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넓은 곳에 혼자 있기 싫어진다.

 

 

 

미로 한 가운데 모자, 이를 관찰하는 잭의 시점.

 

 

여인을 겁탈하려는 악당들. 

 

 

우주 한 복판의 고립.

 

 

아들인 '대니 토렌스'가 성장해 성인이 된 이야기, '닥터 슬립'이 올해 겨울 미국에서 상영한다. 성장한 아들 역은 우리가 잘 알고있는 배우 '이완 맥그리거'. 과거의 트라우마를 안고 자신의 능력을 억누르며 살아온 그가 어떤 활약을 할지 사뭇 기대된다.

 

다시봐도 여전히 서늘하다. 서서히 정신이 나가버리는 '잭'의 변화를 보는 것과 이상한 기운을 눈치채는 아들의 시점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점점 뜨거워 지는 요즘 극한 추위 속에서 펼쳐지는 고립된 가족 공포 미스터리 판타스틱 액션 괴담 스릴러... 샤이닝을 보시라.

더운데, 아빠 말 잘 들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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