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2011)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감독: 린 램지 / 주연: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 C. 라일리, 제스퍼 뉴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자 여행가 '에바'는 '프랭클린'과 결혼 하면서 사내 아이를 낳는데, 이 아이가 '케빈'.
그녀는 결혼과 양육이라는 신세계를 마주할 준비가 안된 여자다. 아이의 탄생이 즐겁지 않고, 울음 소리는 지긋지긋한 소음이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안는 것처럼 케빈은 복수라도 하듯 그녀를 괴롭힌다.
아빠와 함께 할 때는 그저 보통의 아이처럼 살갑지만, 엄마와 단 둘일 때는 그녀 신경을 긁다 못해 끊어 놓는다. 싸이코패스 종합 선물 세트같은 소년.
시간은 점차 흘러 케빈은 청소년이 되고 에바는 그의 행동으로 인해 나락을 걷게 되는데...
층간 소음은 참 문제다.
윗집에 사는 3~4세 정도의 소녀는 아침 7시 정도면 항상 소리를 지르며 똑같은 레퍼토리만 반복한다. 하나는 "하지마!"이며 또 하나는 "나도 갈거야!"이다. (뒤에는 꼭 느낌표를 붙여 줘야 맛이 산다.)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청이 좋아진건지, 아님 원래 타고 난건지 알 수 없지만 요즘은 거의 하현우급이다. 난 이 아이가 너무 싫다. 정말 시끄러워 죽을 지경이다. 세상 최악의 알람이다.
하지만 이 소녀가 나쁜 아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단 한 번의 항의도 해본적이 없다. 좀 살려줘. 오히려 야단치거나 타이르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얘는 외로운 아이란 생각을 한다. 뭔가 '결핍'이 있는 소녀다.
난 함부로 결론 내려본다. 소녀의 환경 탓이라고.
하지만 이 영화 속 '케빈'은 속단 할 수 없다. 영화인게 다행인 아이...
영국의 여성 감독 '린 램지'의 2011년작 [케빈에 대하여]. 동명원작인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을 영화화 했다.
연기의 귀신 '틸다 스윈튼'과 차세대 배우 '에즈라 밀러'가 함께 했다. 부모와 자식간을 연기하지만 다른 자아를 마주하듯 긴장감이 팽팽하다. '틸다 스윈튼'의 변화무쌍한 연기와 몰입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에즈라 밀러'의 집중도는 상당히 놀랍다.
자신을 싫어하는 엄마로 인해 점점 증오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했다는 그는 '케빈'이 '소시오패스'나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에바의 대사에 "니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더 행복했어.'란 말이 있으니...
하지만 케빈의 행동은 누가 봐도 미쳤고 그의 연기 역시 미쳤다.
'케빈'의 성장 과정마다 배역들이 바뀐다. '에즈라 밀러'를 제외한 두 명의 아역들의 더 있는데, 특히 6~8세 '케빈'을 맡은 '제스퍼 뉴웰(Jasper Newell)'은 정말... 꼴보기 싫은만큼 연기를 잘했다. 촬영했을 당시가 9살이었다 하는데 자신의 배역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능력이 대단한 배우다.
영화 전체에 붉은 색의 강렬한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 정확히는 채도 높은 새빨간 색.
토마토 축제, 에바의 집에 누군가 뿌리고 간 빨간 페인트, 붉은 조명, 피 등등.
정열과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헤모글로빈 또는 불안한 예감과 경고같은 것을 연상케 하듯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에바는 붉은색에 정열을 물들기도 하지만, 색을 지워 고통을 감수하기도 하는 수양을 한다.
이 색은 준비가 되지 않은 엄마의 '공포'가 반영된 색이자,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엄마의 '업보'이다.
케빈에 대하여 말 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가? 우리는 정작 에바에 대해 말해봐야 한다. 단순히 괴물 같은 아이를 낳은 엄마이기 때문일까? 맞는 말일지 모른다. 영화는 '케빈'이 아닌 케빈을 바라보는 '에바의 시점'으로 그려졌기에.
그녀가 미혼 일 때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전 과정을 보면 뭔가에 떠밀려서 산다는 느낌이 든다. '프랭클린'을 사랑했으니 남편이 행복해 하는 삶에 자신도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이. '결혼'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출산'이라는 과제. 이 당연한 흐름에 반기를 드는 여자는 '가족'이란 사회에 반기를 드는 사람일 것이다. 억압되지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녀는 엄마가 되기에 어떤 준비도 되지 않았다.
따라서 케빈은 에바에게 만큼은 원치않은 시련이었다.
영화는 엄마와 아들을 분리된 인격체로 그리지 않는다.
세수를 하면 '에바'의 얼굴은 '케빈'과 겹쳐지고, 가지런하게 물어뜯은 손톱과 에그 스크램블 속의 껍질은 보고 싶지도 느끼고 싶지도 않는 동일한 껄끄러움이다. 그녀의 마음 속에 응어리져있던 자유의 구속, 기대에 반하는 실망감, 일그러진 출산의 고통이 ZIP 파일로 압축하고 압축해서 케빈이 된다.
에바는 자신이 살면서 표현 하지않은 '부정적 결정체'를 마주한다.
에바는 알아버렸다. 저 아이가 나의 약점이자 죄책감이란 것을. 케빈을 밀어내면 밀어낸만큼 돌아오지 않는 아이란 것을. 그것을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그래서 분노와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폭발 할 수 없다.
당연하게도 이런 여러가지 감정들이 자신 안에 있을 때는 '조절'하고 '인내' 할 수 있었다. 허나 출산 이 후엔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아들이란 부모의 일부이긴 하지만 동일한 인격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케빈은 통제 불능의 새끼 에일리언이다.
케빈이 음식을 먹는 장면은 혐오스럽게 '클로즈 업' 해서 거부감이 드는 존재로 묘사한다. 마치 가까이 다가 갈 수 없는 짐승의 먹이 뜯어먹는 장면을 멀리서 확대라도 한 듯. 씨리얼을 부수거나 크레파스를 부러뜨리는 장면 역시 에바의 시선을 통해 부담스레 표현한다.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존재를 의아하게 관찰하는 시점. 관객과 에바의 시점을 동일시 해서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아니 그럼 애를 낳지 말아야지!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 모든 부모가 '좋은 부모되기 학원'에 다닌 것이 아니다.
게다가 DNA와 유전같이 과학적 사고로 설명하기에 이 이야기는 너무 극단적인 '공포특급'이다.
극의 마지막. 에바의 질문에 대답하는 케빈.
나쁜 꿈에서 깨어나듯 그의 눈에 어떤 변화가 보인다.
에바는 벼랑 끝에 다다른 자신과 자신의 분신을 정면으로 힘차게 안아야 한다.
이 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진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듯.
주저 앉고 싶은 이 순간, 상황과 맞으면서도 맞지 않는 서정적 노래가 흘러 나온다.
이제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을, 엄마가 된 그녀들을 위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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