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 Le Fils, The Son, 2002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 주연: 올리비에 구르메, 나심 하사이니, 모간 마린느
'올리비에'. 가구 제작 훈련소에서 출소한 소년들에게 목공을 가르치는 중년 남자다.
전기톱과 망치질의 시끄러운 소리 사이로 서류를 받아본 그의 모습이 몹시 흥분되어 보인다. 새로운 학생을 맡을지 말지를 묻는 직원에게 학생이 네명이나 되서 안된다고 거절한다. 담배 한개를 피고나서 새로 온 소년을 몰래 지켜보는 올리비에. 노련하게 학생들의 작업을 돌봐주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다.
집에 도착해서 자동응답기를 듣던 중 한 여자가 찾아온다. 재혼을 한다는 여성은 그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고, 올리비에의 표정은 굳어버린다. 떠나는 그녀의 차를 붙잡고 왜 하필 오늘 그 소식을 알려주는 거냐며 타박하듯 묻는다.
주저하고 망설이던 그는 사무실로 찾아가 소년을 맡겠다고 말하고 용접반에 있던 소년은 올리비에의 반으로 옮겨진다.열 여섯살의 소년, 그의 이름은 프란시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소년의 뒤를 추적하는 올리비에는 결국 프란시스에게 들키지만 상황을 대충 수습한다.
올리비에는 차를 몰고 전 부인이 일하는 주유소를 찾아간다. 프란시스가 출소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이미 내린 결정을 뒤로한 채 그를 받아들일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에게 미쳤다고 울부짓으며 말하는 전 부인.
우리 아들을 죽인 애야!
올리비에는 5년 전 아들을 잃고 아내와 이혼한 뒤 혼자서 살고 있었으며, 아들을 죽인 범인이 바로 새로 온 프란시스였던 것. 초조함과 흥분된 감정을 안고 프란시스를 대하던 올리비에는 어느 날, 훈련소에서 쓸 목재를 가지러 가자며 단 둘이 외딴 벌목원으로 향하는데...
아버지의 등
'다르덴 형제'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 촬영과 플롯으로 유명하다. (플롯을 가지고 노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정 반대의 감독이라 보면 된다)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며 그들은 꾸준하게 따라가는 시선을 고수함으로서 끊임없이 내면을 파해친다. 지속적인 보여주기와 관찰을 통해 관객은 인물의 행동과 선택을 곱씹어보게 된다.
[아들]에서의 카메라 역시 '올리비에'의 뒷모습을 끈질기게 뒤쫓는다. 심지어 감독들이 애용하는 핸드 헬드의 카메라(삼각대 없이 들고 찍는 촬영)는 너무 타이트한 앵글로 잡혀있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주연을 맡은 '올리비에 구르메'는 영화 [아들]로 2002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연기를 펼쳤는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안경너머의 시선과 톱밥이 묻은 등, 그리고 어지러움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관객만이 체험한 감정일까?
아버지의 등은 가족을 짊어진 남자의 처연함이 담겨있다. 자식들은 성장하고 상대적으로 왜소해지는 아버지는 그의 뒷모습을 감춘다. 어깨가 굳어버린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묵묵히 걸어왔다. 나이가 들고 방심한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자식들의 몫이다.
올리비에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남자이다. 그의 옆에 손잡아 줄 아내는 이혼 후 재혼을 할 것이며 임신까지 했다 말한다. 이제 그의 등을 보아 줄 자식하나 부인하나 없다. 상처와 충격을 안고 살아온 그는 심지어 아들을 죽인 아이까지 지켜봐야한다. 어찌해야 할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올리비에의 등을 어루만져 줄 순 없지만, 그의 선택을 지켜봐야하는 몫은 관객에게 있다. 흔들리는 카메라때문에 어지러운 관객보다 그의 속은 더 울렁거린다. 망설임, 불안함과 초조함까지도 굳은 표정안에 가두어버린 그는 등으로 울고 분노한다.
영화는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프란시스의 입을 빌어 말해주지만(목을 졸라 죽였다고 말한다) 어떠한 과거의 장면이나 묘사도 나오지 않는다. 응당 올리비에의 처벌을 받아 마땅할 프란시스이지만 범죄의 대한 설정이 자세히 나오지 않기에 관객은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 그가 소년에게 벌을 내릴지 용서할지 알지 못하며, 또 다른 사건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불안하다.
우리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을 통해 그의 감정을 상상하다가, 가끔 드러나는 얼굴 표정에 두려워진다.
사운드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다르덴 형제' 영화의 특성상 '앰비언스 사운드'(현장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구 제작할 때 나는 톱소리와 망치질 소리, 도로 위의 달리는 자동차 소리등이 거의 전부이며 대사량도 극히 적다. 단지 어색한 프란시스와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정적인 현장의 소리만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올리비에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어떤 멜로디나 리듬도 감정을 집중 시키지 못하게하는 방해물일 뿐이다. 우리의 희노애락이 발현하는 매 순간마다 영화처럼 찬란하거나 슬프거나 장엄한 음악이 흐르진 않는다. 음악은 영화적 장치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장치를 배제하면 우리의 현실과 거의 동일해진다.
마치 시험을 치루는 조용한 교실의 풍경과도 같다. 적막이 흐르는 한 가운데 누군가 떨어뜨린 연필의 소리는 쿵쾅대는 클럽의 음악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것이다. [아들]에서의 소리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영화의 온도는 극도로 차갑게 느껴지며 금방이라도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끊어질 듯 보인다. 현기증나는 카메라와 별다른 사건없이 지나가지만 그런 와중에도 관객들은 긴장의 끝을 놓지 않는다. 언제 올리비에의 연필이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결하고 깔끔한 이야기는 오랜만이다.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주된 과제를 격정적이면서 냉정하게 풀어갔다.
항상 영화 관람 뒤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는 필자는 이번 만큼은 용서와 관용이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올리비에의 선택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였으며, 적잖은 감동이 밀려온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중 베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이니 팬이시라면 꼭 관람하라 권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Popup.nhn?movieCode=3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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