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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2014] - 고독한 천재의 달리기

천재는 왜 외로운가? [Daum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2014) - The Imitation Game

감독: 모튼 틸덤 / 주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구드

 

 

자, 게임을 시작하지.

 

 

24시간 마다 바뀌는 해독불가 암호
암호를 풀고 1,400 만 명의 목숨을 구한 천재 수학자

매 순간 3명이 죽는 사상 최악의 위기에 처한 제 2차 세계대전.
절대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 ‘에니그마’로 인해 연합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결국 각 분야의 수재들을 모아 기밀 프로젝트 암호 해독팀을 가동한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은 암호 해독을 위한 특별한 기계를 발명하지만 
24시간 마다 바뀌는 완벽한 암호 체계 때문에 번번히 좌절하고 마는데...
과연, 앨런 튜링과 암호 해독팀은 암호를 풀고 전쟁의 승리를 끌어낼 수 있을까…?

[Daum 영화]

 

 

 

이게 진짜 된다고?

 

 

이미테이션 게임

집중하고 있나요? 

형사와의 면담으로 시작한 '앨런 튜링'의 독백은 극의 중반이 되서야 이어진다. 소련의 스파이라는 의심을 하는 형사는 그가 단순히 동성애자라는 죄목으로 벌을 받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스파이라는 증거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전제하에 작은 단서 하나라도 캐내기 위해 질문을 한다.
'앨런 튜링'은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냐는 형사의 질문을 시작으로 '이미테이션 게임'을 제안한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즉, '모방(흉내내기) 게임'으로 해석가능한 이것은 '앨런 튜링'가 주장하는 일종의 주제이자 정의이며, 실제 문답을 기반으로 한 게임으로서의 정의,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의 대사를 통해 설명을 곱씹어보자.

 


1. 기계는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다. 기계와 사람은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서 생각을 안한다는 건 아니란거다. 인간은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한다. 딸기를 좋아하고, 스케이트를 싫어하고, 슬픈 영화를 보고 울고, 꽃가루 알러지가 있고... 서로 다른 취향이나 선호도는 우리 뇌가 서로 다르고 생각도 다르기에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서로 다른 것처럼 구리, 전선, 금속으로 만든 뇌도 다를 수 있다.

 


'앨런 튜링'이 말한 '이미테이션 게임'의 정의는 인간과 기계에 대한 판단 기준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의 동성애자라는 죄목(1950년대 영국에서 동성애는 중죄였다)은 인간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못한데에서 기인하기 때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타인의 죄를 판단하는 사회라면 인간에 의해 탄생한 기계역시 인간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들이 오히려 기계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에겐 사회를 원망하는 동시에 그런 사회도 인정해야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담겨있을지 모르겠다. 

 

 

 

사과를 줄게. 내 사과를 받아줘.

 

 

 

2. 기계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게임으로 '심판'과 '대상'이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심판은 질문을 하고 대상은 대답에 따라 그 대상이 사람인지 기계인지 판단한다. 심판은 질문만 하면 된다. (그래서 형사는 질문하고 '앨런 튜링'은 대답한다)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라는 그의 목소리는 형사에게 건내는 게임임과 동시에 관객에게 자신을 판단해보라는 테스트이다. 흡사 [블레이드 러너]에 '레플리칸트'(인간이 창조한 인조인간)를 알아보기위한 테스트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표정을 관찰하기 위한 클로즈업이나 긴장감을 위한 액션과 리액션의 심리 싸움은 없다. 단지 '앨런 튜링'의 행적들로 인간적인가 비인간적인가를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앨런 튜링''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답을 하는 대상이지만 심판에게 진실된 답을 듣고 싶다. 처음부터 형사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당신이 심문하는 입장이라 주도권을 쥐고 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산이라고. 왜냐면 상대가 모르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것을 알면서 왜 질문하는가? 


'이미테이션 게임'은 기계인지 인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이상의 질문, 천재가 평생 짊어졌을 고독의 이유를 호소한다. 자신이 왜 이렇게 된건지 알고 싶지만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과연 제대로 된 삶을 산 것인지,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것인가에 대한 자문이다. 급우로부터 괴롭힘 당하지 않기위해 감정을 철저히 숨겨야했던 소년, 친구를 사랑했던 동성애자,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었던 천재, 그로 인해 나라에 존폐위기가 걸린 비밀을 끌어안고 괴로워했던 인물. 남들과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서 괴물같아 보일지언정 자신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라는 내면의 고백을 한다.

형사는 감히 그의 역사를 판단 할 수 없다. 삶의 갈림길에서 항상 선택을 강행했던 '앨런 튜링'처럼 영화는 관객 각자의 판단을 요구한다.  

 

 

 

진정한 친구는 한 명이면 된다지만... 많으면 더 좋다.

 

 

 

혼자 달리기

나치 독일의 암호기 '에니그마'(Enigma; 그리스어로 ‘수수께끼’)를 해독에 필요한 시간은 이론상 2천만 년.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하게 해야하는 사람들의 신경은 매우 날카롭다. 천재 수학자이지만 필터를 거치지않은 말투와 사고, 타인의 배려라곤 안중에도 없는 '앨런 튜링'은 팀에서 외톨이를 자처한다. 때문에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혼자서 독자적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단순히 몇 개의 문장만 알아내던가, 일시적 해독을 위한 것이 아닌 그 이상을 해결하려는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한다. 인간의 두뇌가 아닌 기계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설계에 착수하지만, 팀원들에게는 성과없는 쓸데없는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공식과 기호등을 정신없이 써내려가는 그의 노력과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미친듯이 달리기하는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보여진다. 누군가와 함께 달려서 경쟁을 부추기는 것도 아니며, 잘한다고 독려해주는 이도 없는 그의 달리기는 더욱 힘들다. 카메라는 그가 달리는 과정만을 보여줄 뿐, 목표로 하는 결승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지루한 싸움을 홀로 감당해야만한다.

 

 

 

이걸 언제 다 만들어.

 

 

 

매일같이 피를 부르는 미적분을 했었다는 그의 탄식. 전쟁에서의 생사를 결정해야하는 순간에도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일을 했고, 암호 해독의 정보없이는 불가능한 승리를 이끌었던 비밀스런 업적들.

실제 전투 장면과 또 다시 등장하는 달리기 장면의 교차. 숨이차고 일그러진 그의 표정은 수 많은 목숨이 자신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선택을 감당하기 힘든 내면과 겹쳐진다. 초반의 달리기와는 달리 이번은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헐떡인다. '앨런 튜링'이 도착한 장소가 그가 목표로 한 장소인지 알 수 없다. 지쳐버린 그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응시한지만 목적을 이루었다는 승리의 쾌감은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는 처음부터 혼자였고 마지막 순간에도 혼자였다. 
외로움이란 감정 그 이상으로 혼자이며 고독하다.

 

 

 

그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노르웨이 출신의 감독 '모튼 틸덤'이 연출한 [이미테이션 게임]은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을 수상했으며,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수작이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독일의 암호기 '에니그마'를 해독한 시점을 중심으로 주인공의 성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청소년기의 과거를 교차로 보여준다. 

 

필자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극적 표현을 위한 왜곡을 반대하지 않는다. 세상엔 영화같은 삶을 산 인물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중요한 삶의 선택이 매순간 극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사실과 전혀 다른 표현을 하고, 마치 거짓을 진짜인양 강조한다면 그것은 날조이다. 다행이도 이 영화는 연출한 감독과 배우 모두 전기영화가 아님을 강조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암호를 해독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던 기계의 기능은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는 6시간이나 걸렸다. 그 후로 성능을 계속 향상시켜 1시간 내외로 해독했다. 또한 '앨런 튜링' 초반 동성애자임을 숨기는 것처럼 표현된 연출과는 다르게 경찰에게 동성애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고 알려진다.

완벽한 고증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영화로 나오지 않았다면 면밀히 알 수 없었던 그의 일대기를 보는 것은 관객에게 큰 기쁨이다. 특히 영화의 끝, 전쟁에서 승리한 후 증거와 자료를 태우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흐르는 자막은 애처롭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앨런 튜링'의 업적을 토대로 후대 과학자들이 연구한 튜링 머신을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라 부른다라니... 마치 내가 쓰는 컴퓨터에 '앨런 튜링'의 혼이 깃든 것 같은 느낌이다.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지독한 삶을 살았던 천재의 일대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보시길 바란다. 끝으로 영화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말이자 '앨런 튜링'을 대표하는 대사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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