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1999) - Arlington Road
감독: 마크 펠링튼 / 주연: 제프 브리지스, 팀 로빈스
오늘의 영화 침략은 '마크 펠링톤' 감독의 1999년작, 함정(Arlington Road)이다.
한 낮의 주택가. 한 소년이 비틀거리며 도로를 걷는다. 운전을 하던 '마이클'(제프 브리지스)은 도로 위 소년에게 뭔가 이상이 있음을 느끼고 급히 차에서 내린다. 그를 쫓아가 보곤 경악하는 마이클. 소년의 왼팔은 피범벅. 재빨리 응급실에 데려가고 잠시 후, 슬픔에 잠긴 소년의 부모가 마이클에게 다가와 감사를 표한다. 공교롭게 그들은 마이클의 이웃. 마이클은 이사온지 두 달이나 된 이웃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자신의 무관심을 책망한다.
조지 워싱톤 대학에서 테러리즘을 강의 하는 마이클. 2년 전 FBI인 아내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투입된 작전 중 사망하고,
지금은 9살 된 아들 '그랜트'(스펜서 트리트 클락)와 살고 있다. 졸업생인 '브룩'(홉 데이비스)과 함께하고 있지만, 두 부자는 아직도 그 날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고당한 소년 '브래디'의 아빠 '올리버'(팀 로빈스)와 엄마 '쉐릴'(조안 쿠삭)은 마이클 부자와 브룩을 집으로 초대하고,
그들은 조금씩 친한 이웃으로 발전한다. 어느 날, 집으로 올리버의 우편물이 잘못 배달됨을 안 마이클은 이웃의 집에 소포를 전해주러가고, 건축 기사인 올리버의 몇 가지 이상한 행동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연인인 브룩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마이클의 지나친 의심을 탓한다.
올리버 가족과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의심도 커져가는 마이클. 캔자스 대학의 졸업 앨범을 우편으로 받아보곤 거기서
올리버의 진짜 이름이 '윌리엄 페니모아'란 사실을 알게되고 그의 거짓말을 확신한다. 이웃과의 사이가 불안해 질 때 즈음 아들은 캠프에 가고 싶어하고 그의 요청을 어쩔 수 없이 허락한다. 또 다시 조사를 시작하다 진짜 '올리버 랭'은 이미 사망했다는 정보를 얻게 되는 마이클.
사망한 아내의 동료이자 친구인 FBI요원 '위트'(로버트 고셋)에게 올리버의 뒷조사를 부탁하지만, FBI가 사적인 요구을 그리 쉽게 허락할리없다. 마이클 스스로 정보를 캐내고 캐내다 결국 '윌리엄 페니모아'는 16살 때 우편물실 폭파범으로 체포 되었다는 과거를 알게되고...
등장
"...어두운 거리에서 죽은 고양이와 폐물들이 나뒹구는 것보다, 밝은 대낮에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더 흥미 있습니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서스펜스'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에 문장 다음에 이어지는 '서스펜스'에 관한 설명이 중요하지만 '대낮'이란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있다.
영화의 첫번째 씬이며, 인물에 대한 별다른 정보없이 시작한다.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하며 밝은 낮에 벌어진 일이라 더 충격적이다. 예전에 이 영화를 봤지만 제목이 기억나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 장면만큼은 머리속에 깊이 각인 되어 있을 것이다.
터덜터덜 엉킨 스텝으로 걷고 있는 위태로운 소년. 밝고 뿌연 가운데 채도가 떨어지는 한적한 거리와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 운전을 하던 남자는 앞서 걷고있는 소년의 걸음걸이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차에서 다급히 내려 소년을 따라잡으려는 남자.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계속해서 비틀거리는 소년. 간신히 다다랐을 때 피투성이가 된 소년의 손과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남자는 아이를 품에 안고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어둠은 항상 두렵다. 잘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물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긴장하고 대비한다. 반면 대낮은 무방비다. 세상이 잘 보이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놀랄만한 일이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을라 믿는다. 밝은 공포는 서서히 다가온다. 어둠에서 탄생한 공포가 아니기에 낯설고 받아들이기에 시간이 걸린다.
낮은 밤보다 현실적이고 안전한 세계이다. 밝은 명도와 '마이클'의 하얀 셔츠는 소년의 붉은피와 극강의 대조를 이루고 시각적인 충돌을 일으킨다. 흰색은 더 희고 붉은 색은 더 새빨갛게 표현되어 더욱 선명하다.
이 등장은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과 잘 연결된다. '마이클'처럼 관객은 대낮에 일어난 사고로 오만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저 소년은 누구지? 왜 저런 사고를 당한거지? 부모는 뭘하는 사람이길래? 등등.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의심과 조사를 통해 천천히 알게되지만, 초반부는 어떤 설명도 하지않는다. 주택가라 보는 눈이 많고, 넓고 개방된 공간이라서 안전할거라 생각한 믿음은 순식간에 깨져버린다. '마이클'과 '소년'의 등장은 가장 큰 문제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최소단위이다. 장면은 하나의 사건으로 확장되고 안보의 위협과 테러의 문제로 다시 확장된다.
공중 전화에서 전화를 하는 '브룩'의 장면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공포 영화의 전형성이 아닌, 캐릭터의 위치를 전환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위협이 정면으로 찾아오는게 아닌 후방에서 드러내는 방식.
특히나 '쉐릴 랭'역을 맡은 '조안 쿠삭'의 부담이 겹겹이 쌓이던 찰나 그녀의 등장은 너무 무섭다. 공포는 우리 몰래 항상 뒤에 버티고 있었다. 결국 우린 공포의 존재를 영영 모르고 살게될지 모른다.
원제
영어 제목을 한글화 하기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직역을 해서 바로 알아들으면 참 좋을텐데 그렇지 않은 제목들이 참 많고, 우리의 정서에 맞는 제목으로 쉽게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요즘 수출되는 한국영화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일것이다.
'함정'이라 하면 누구나 주인공이 난처한 상황에 걸려들겠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한국 관객들에게 극의 느낌을 전달 할 수 있다. 그런데 원제는 [Arlington Road]. 이 장소는 어떤 곳이길래 제목으로 정했을까?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를 생각해 보았다.
1. '알링턴'(Arlington)은 워싱턴 주. 미국의 수도이자 심장부 '워싱턴 D.C'와 가까운 곳.
2. 원싱턴은 FBI(미연방수사국)가 있는 곳.
3.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가 있는 곳.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자들의 무덤.
사전 지식이 없다면 우리가 받는 느낌과 그들의 체감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포스터를 보고 미스터리 스릴러란 장르란 사실을 미리 안 한국 관객이라면 누가 함정을 만들었고 누가 함정에 빠진걸까?를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관객들은 [Arlington Road]란 제목만으로 아마 미국 내에서 발생한 위협에 대한 이야기일거야 라고 짐작할지 모른다. 이처럼 다양한 추측을 내리는 것은 관객의 개인적 의견이지만, 그 추측을 제공하는 '제목'은 신중하게 결정되야 한다. '원제'가 무엇인지 뜻은 뭘 의미하는지 찾아보는 것은 감상을 매우 흥미롭게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다.
영화가 개봉하고 2년 후 2001년 9월.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에 항공기 충돌로 인한 테러 사건이 일어난다. 전세계인들이 경악을 금치못하게 했던 사건 '9.11 테러.'
2001년 밤. 잠이 오지 않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본 그 뉴스. 아직도 생생하다.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두 눈을 의심했던 순간이었다. 승객 전원 사망, 끔찍함, 아수라장, 그리고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 발생의 원인은 분분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담하다.
아, 뭔가 경고라도 한듯한 영화 개봉의 섬뜩한 타이밍과 미친 현실이라니.
새로 이사 온 이웃주민의 소음 덕에 찾아본 영화였다. 도대체 뭐하는 인간들일까 궁리하다 예전에 본 이 영화가 기억났다. 심장이 쫀득해지는 영화다. 처음과 끝에 비해 중간이 좀 느슨한 감이 있었지만 엔딩이 강렬해서 좋았다. 무더운 여름, 한번 즈음 불편한 이웃의 소음 때문에 잠못 이루신분들을 위해 추천 드린다.
이미지 출처: https://abcnews.go.com/US/bomb-threat-arlington-national-cemetery-investigation/story?id=5733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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