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이름은 김병수. 올해 일흔이 되었다.
소설의 10분의 1이 되어서야 자기 소개를 하는 남자. '김병수'는 알츠하이머로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외동딸 '은희'와 단둘이 작은 마을에 사는 시인이자 수의사... 이지만 그는 과거 살인범이었다. 그가 사는 마을과 인근 군에선 여성 셋이 목숨을 잃은 연쇄 살인 때문에 한참 난리이다.
어느 날, 운전중 부주의로 접촉사고를 낸 병수. 사고 차량은 사냥용 지프. 연락처를 교환하려는 병수에게 괜찮다며 그냥 가라고 하는 차주인. 뱀의 눈처럼 차갑고 냉혹한 그의 이름은 '박주태'. 피해 정도를 살피기 위해 지프 뒤로 간 병수는 트렁크에서 흘러 나오는 피를 보고 직감한다. 박주태 그는 살인범이란 걸.
은희는 병수에게 '만나는 남자'를 데려와 소개한다. 부동산쪽 일을 한다는 그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떠난 후 기억을 환기하려 쓴 노트에서 알아차린다. 박주태다.
이제 병수는 박주태로부터 은희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점점 흐려져가는 기억은 뒤죽박죽이 되어서 혼란스런 상태. 끊임없이 조각나는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병수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학창시절 [당신의 나무]라는 단편을 시작으로 '김영하' 작가의 빅 팬이 되었다. 냉소적이고 건조하지만 무거운 한 방이 있는 이야기들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스타일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를 먼저 본 후에 읽었는데 이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소설을 읽지 않고' 보았기에 주인공이 가진 약점은 꽤 독특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름 괜찮은 스릴러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소설이 가진 배경과 캐릭터 설정 외에 어떤 것도 담아내지 못한 기분이 든다. 이 소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가를 따져보는것 이상의 무엇이 있는 이야기다. 우선 소설이 광속으로 읽힌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1인칭 시점의 이야기라 그런지 글의 편집과 길이, 시간 순서도 해체되어있다.
기억이 떠오르다마는 것처럼. 기억나는 순간 순간을 써내려 간 것처럼.
하지만 모든 것이 드러나는 큰 줄기는 정해져있고, 끝을 향한 종착지만큼은 확실하다.

소설과 영화의 비교를 떠나서 영화 속 두 주연 배우들의 연기를 언급해야겠다.
당시 영화 관람을 하기 며칠 전 '설경구' 배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영화 포스터를 보여 주었는데 한번 보러가야겠다란 말을 바로 했다.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포스터에 넘쳐 흐른다. 연기가 과하다고 평하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완급조절이나 연기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단지 극한의 캐릭터를 연기 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임은 분명하고 실제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때 그 '시선'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마치 돋보기를 쓴 노인이 내 앞에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보는 그 시선. 또한 기억을 잃을 때 얼굴 가죽이 계속 꿈틀 거리는 듯한 테크닉은 배우가 스스로를 얼마나 깨부시고 연구하는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이미 체중 증감량으로 유명한 배우이긴 하지만.
'김남길' 배우는 소설 속 '박주태'가 아닌 '민태주'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원작에 비해 비중이 많아졌으며 거의 1:1 구도로 만들려는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사실 이런 연출 방식 때문에 원작을 미리 접한 관객들중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책은 '김병수'의 원맨쇼와 다름없고, 제한된 런닝타임의 영화에서는 분명한 장르의 인지와 선명한 적과의 대립이 더 이해하기 쉽다.
'병수'라는 너무 쌘 캐릭터를 받아줘야되는 연기는 초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의 공을 받는 포수처럼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캐릭터 성격과 색깔을 잘 살리는 연기가 우선시 되야겠지만, 에너지를 되받아 치기도 하고 흘려 넘기기도 해야하기 때문인데 어려울법한데 밀당을 정말 잘하신 것 같다. 자신의 몫을 잘 챙겼다.
소설로 돌아오자.
범죄자가 저지르는 악의 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이야기는 봤어도 그의 심연을 이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들여다 보는 소설은 처음이다. 김병수는 악이다. 살인의 프로이며 완벽주의자이다.
...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7 page -
차량 사고로 인한 두 번의 뇌수술로 그는 살인의 쾌감을 잃는다. 그 때부터 자신에게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고 짐작한다.
'박주태'로부터 지켜야만 하는 딸 '은희'는 친자식이 아니다. 그가 죽인 피해자의 딸을 키운 것이다. 제발 딸을 살려달라는 은희 엄마의 사정에 걱정하지 말라며 약속한다. 그는 빈말을 일삼는 놈들을 싫어한다. 김병수의 약속에는 자신의 완벽주의와 자존심이 걸려있다. 그와 더불어 철저하게 자신을 고립시키는 생활을 하고 있다.
시를 쓰고 책을 읽고 좋은 구절들을 되짚는다. 그 중 '반야심경'의 한 대목은 영화 [곡성]의 악마가 내뱉는 예수의 말을 패러디 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와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 148 page -
세상 모든 만물은 허상이며 이에 집착하는 일은 고통이라는 '반야심경'의 이 말로 자신의 초월을 꿈꾸는 병수.
소설의 후반, 그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연쇄적으로 파괴되어지는 순간, 그 순간마저도 우주의 점으로 사라지는 그때. 그가 도저히 해탈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가 읽은 삶의 지혜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악마의 주문 같다. 병수가 저지른 모든 살인과 그 기억들은 그가 고통을 느끼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아니 고통이 뭔지도 모른다는게 맞을 수도.
철저히 혼자서 살인을 저지르는 고독한 전문가에게 내려야 할 가장 잔인한 철퇴란 무엇일까? 산산히 부서져 가루가 된다는 것, 시공간이 오그라들어 저 끝없는 소실점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터.
이렇게 싸늘한 방식의 단죄는 본적이 없다. 이 소설은 헛웃음이 나오는 허망한 블랙 코미디이다.
김병수의 기억과 함께 걷다 막다른 곳에서 뒤를 돌아본다. 그가 걸어온 길이 거의 다 휘발되어 버린다. 벼랑 끝에 서있지만 중력의 방향도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허무한 결말이라 말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예상 가능한 결말이라 식상하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난 캐릭터와 그가 처한 상황 이상으로 끝을 마무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김영하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의 첫 단편은 내겐 네잎 클로버였음이 분명하다.
단순한 스릴러가 아닌 소설을 찾는 분들께 추천드린다. 단순하게 읽히고 오래 남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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